성지순례/도보성지순례

한티가는 길 5구간

경원이네 2021. 9. 7. 11:00

마지막 5구간 '사랑의 길'(8.1km)은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며 비우고, 뉘우치고, 용서하며 함께 걸어왔던 이들과 함께 사랑의 의미를 알아가고 진정한 나를 찾는 길로, 진남문, 마당재, 한티성지, 숯가마터, 한티마을 사람까지이다.

걸은 날: 2021년 9월 5일

출발시간:  8시 10분

 

어제 마당재까지 걸었기에 오늘은 한티순교성지로 바로 가기로 하고 일찍 출발...

성지에 도착을 했지만 아~ 이게 웬일인가? 주차장 개방시간이 9시란다.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거리도 있고 성지입구 차도에 장시간 주차를 할 수도 없어 기다리다 보니 9시 정각에 차단기가 열린다. 내가 첫번째 입장객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짐을 챙겨 첫번째 스템프 함 위치로 향했다.

한티순교성지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한티마을에 모여 살았던 수십명의 신자가 무더기로 처형된 비극의 현장으로 그들의 넋을 기리기 마련된 성지란다. 한티순교성지가 성지로서 갖는 의미는 매우 특별한데, 그 이유는 전국에 많은 성지가 있지만 순교자들이 실제로 살았고, 그 자리에 묻힌후 지금까지 무덤이 그대로 전해오는 성지는 잘 없기 때문이란다.

순교자들의 무덤을 따라 참배하고 기도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 보란다.

억새마을(한티공소)

천주교 신자들이 을해박해(1815년) 이후 숨어들어와 살던 본래 한티마을은, 현재 순교자 묘역 대형 십자가 뒤편이라고 한다. 병인박해가 한창 이어지던 1868년 늦봄 포졸들이 와서 신자들을 처형하고 다시는 이곳에 와서 살지 못하도록 마을을 불태워버렸는데, 살아남은 교인들은 온 산에 흩어져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을 찾아 무덤을 만들고 이 거룩한 땅을 자자손손 가꾸고 보존하자며 지금의 장소로 내려와 새로 마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883년 김보록 신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티공소의 천주교 신자는 39명이었고, 고해성사자가 20명, 영성체자가 19명,  세례자가 3명, 혼인성사가 1쌍으로 1885년 12월 신나무골에 부임한 김보록 신부는 자주 이곳에 왔었다고 한다.

이곳 신자들도 큰 축일에는 밤중에 90리길을 걸어 신나무골에 가서 미사를 참석하였다고 하는데, 1900년 초에는 이 마을의 신자 수는 80명이 넘었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신자들이 일본과 만주로 떠나기도 했지만 가실성당의 신부가 정기적으로 와서 미사를 하였다고 한다.

한국 전쟁 중 다부동 전투가 치열 하던때, 북한군이 이 마을에 머물기도 해 전쟁의 아픔을 견뎌야 하기도 했단다. 

그후 남원리에 공소가 생기면서 신자수가 줄었고 해발 600m에 분자 처럼 자리한 이 마을의 가옥형태는 억새 초가 였다고 한다. 억새는 매년 이엉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으며 당시의 산촌문화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오랜 보존을 위해 여름철이나 겨울철 습기로 실내가 눅눅해질때는 불을 지핀다고 한다.

숲가마터를 향하여..

이제부터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거룩한 땅을 밟으며 그들을 기리는 순례의 길이 시작되는데, 이 순례의 길은 3가지(십자가의 길, 인내의 길, 겸손의 길) 테마로 나뉘었다.

먼저 십자가의 길은 19분의 순교자 무덤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할수 있고, 인내의 길은 7분의 순교자 무덤을 참배 할 수있으며 숯가마터 현장도 있다. 마지막 겸손의 길은 11분의 순교자 무덤을 따라 순례할 수있다.

이 코스는 가는 길목마다 십자가 모형에 번호가 매겨진 묘지를 발견할 수있다.

 

숯가마터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숯가마터

천주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중이 살수 밖에 없었고, 박해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더 깊은 곳으로 떠나야 한단다.

가축이나 땅을 소유할 수 없었기에 생계를 위해서 옹기와 사기를 굽고 숯을 만들어 내다 팔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행상을 하는 동안 박해를 비롯한 여러 정보들도 교환하고 헤어졌던 교인들도 서로 만날수 있었다고 한다. 

한티에는 사기 가마터와 숯 가마터가 여러 곳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현재의 숯 가마터는 참나무 군락지 내에 바람을 피하도록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숯가마터에는 지붕이 없는 것과 지붕이 있는 두 가지 형태가 있었는데, 전자는 참나무를 1m 길이로 쌓은 후 어느 정도 불이타고 나면 흙을 덮어 두는 방식이고, 후자는 지붕이 있음으로 흙을 덮는 대신 불구멍을 막아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함으로로 불이 서서히 꺼져 숯을 만드는 방식이란다.   

한티마을 사람

한티의 순교자 묘역 내에는 14m의 대형 십자가가 있다. 그리고 십자가 앞 마당 우측에 크고 작은 돌들이 서 있는데 이를 한티마을 사람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세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한다.

하나는 마을이 존재했음 뜻한다고 한다. 예날에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우곤 했는데 박해(1868년)당시 불태워진 순교자의 마을이 십자가 뒷쪽에 자리하였기 때문이란다.

하나는 한티순교자를 뜻한다고 한다. 크고 작은 입석은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순교한 한티의 남녀노소 순교자이며, 바닥의 둥근돌은 칼날에 떨어진 순교자의 머리라고 한다. 

하나는 한티순교자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지금의 나 자신을 뜻한다고 한다.

한티순교성지 피정의 집

순례자들의 성당

야외 14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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