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해외성지순례

이스라엘 성지순례(시온산-최후의 만찬기념경당/성모영면성당/통곡의벽)

경원이네 2013. 5. 13. 20:00

최후 만찬 기념 경당 (Coenaculum)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셨고(마르 14,12-31)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뒤에도 제자들은 이곳에 자주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중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그 말씀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전파되어 나갔다. 예루살렘 성벽을 시온 문으로 빠져나가 약 100m 가량 걸어가면 2층 석조건물이 있어서 옥외로 난 돌계단을 올라 마르코의 다락방을 찾아보게 된다. 수백년 동안 줄이어 이곳을 찾는 성지 순례객들의 발길이 닿아서인지 계단 돌들이 움푹 패어 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던 장소로 여기고 십자군 시대 기념 성전을 지었으나 이슬람의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48년에는 이스라엘 정부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현재는 유다인들이 관리하며 근처에는 ‘다윗의 무덤’이라고 잘못 전해진 유다인 회당이 있다. 유다인들은 시나고가와 탈무드 학교를 만들고 위층에 있는 성령강림 기념 성당을 폐쇄시켜 버리고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만을 모든 종파에게 개방하였으나 종교적인 예식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단지 일 년에 두 번, 성 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의 전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는 강제로 빼앗긴 기념 성전과 수도원 건물을 되찾으려고 했으나 헛수고로 돌아갔다.

 

 경당 진입로

 

최후의 만찬 성당 문 

 

 

관련 성경을 읽고 있는 에스델 구역장님

 

 

최후의 만찬 경당 안에 있는 조형물 

 

 

성모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 (Dormitio Beatae Mariae Virginis)

1900년부터 1910년에 걸쳐 세워진 돔에 딸린 종루의 모습을 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마리아께서 예수님과 함께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도 한다(사도1,13-14). 지하 성당에는 영원한 잠으로 들어가신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관할) 1898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 그 때 당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있던 술탄 압둘 하미드가 방문기념 선물로서 폐허가 된 이 성전 부지를 황제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황제는 이 부지를 독일 퀼른 대교구장에게 이양했고, 가톨릭 성지개발 독일 재단에서는 기념 성전을 지어 독일 보이론 소속 베네딕도 수도회로 넘겨주었다. 이 기념 성전이 세워기지 전부터 이곳에는 이미 초세기 때부터 기념 성전이 세워진 적이 있다. 사도들 시대에는 조그마한 기념 성전이 있었고, 383년경에는 비잔틴 양식의 성전이 위치했었다. 415년경에는 예루살렘 주교 요한 2세가 대성전 ‘하기아 시온(거룩한 시온)’을 건립했었다.

이 대성전은 614년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고, 1009년에는 회교도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 후 십자군 시대에 들어와서 폐허가 된 성전 자리에 기념성정을 지어 마리아께 봉헌했다. 이곳 시온산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발상지라 하여 이 기념성전을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이 성전은 1219년 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어 버렸다. 오늘의 대성전이 자리하기까지 거의 6백여 년 동안 이곳은 사실상 폐허 상태로 방치되었다.

 

 성모 영면 성당(聖母 永眠 聖堂) 전경

 

 

성 베네딕토 수도원 안에  위치한 성모 영면 성당

 

성모 영면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

 

성당 내부

 

 

 성당으로 들어서면 제단 정면에 비잔틱 양식의 모자이크로  "티히빈의 성모님"이 아름답 게 장식 되어 있는데 성모님은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숙이고 왼손으로는 신성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가리킨다. 아기 예수는 축복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왼손으로는 복음서를 펴들고 있다. 

 

 

지하 성당 중앙에 잠들어 계신 성모 마리아 

 

 

 

 

 

통곡의 벽 (West Wall)

   유대 민족의 신앙의 상징, 전세계의 유대인의 순례지이고, 신전 서쪽 벽의 일부 하코텔 아말라비이다. 높이 15m 이벽이 [통곡의 벽]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긴 유랑시대에 유대인들은 해마다 한 번씩 이곳에 들아와 신전의 파괴를 한탄할 것은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약 2천년의 방랑시대, 세계 어디에 있어도 그들은 귀향의 희망을 재정복하고 유대 민족 통일국가의 꿈의 상징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고 유대인의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다. 그 후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으나, 헤로데 왕이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재건하였는데, 그때의 성전 서쪽의 옹벽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같은 비극을 지켜 본 이 성벽은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인데, 중세 유대인들은 성전이 파괴된 날이라는 아부월(유대력 5월) 9일에 이 벽 앞에 모여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함락을 슬퍼하고 그 회복을 기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에 분할되어 귀속되었으나, 세계67년 6월의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하여 이 성벽은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내려가는데 하도 예뻐서 한 컷(아빠는 열심히 찍고있는데 아이의 시선은 우리를)

 

 

전쟁으로 인해 벽이 온통 총구멍

 

여성구역의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