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해외성지순례

이스라엘 성지순례(베들레헴-예수님 탄생 기념성당/가타리나성당)

경원이네 2013. 5. 13. 20:15

베들레헴 (Bethlehem)

예수님 탄생지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진 언덕 위에 세워진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베이트람'이라 불리는 베들레헴은 구약시대에는 '에프라타'라 불리기도 했다. 베들레헴은 구약시대 때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마을이었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헤로데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해발 790m 언덕위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야곱이 부인 라헬을 이곳으로 가는 길가에 묻었다는 창세기 35장 19절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그 외에도 베들레헴은 여러 번 언급되지만 그렇게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 다윗이 태어나서 목동으로 자라난 곳이라는 사실, 사무엘이 어린 다윗을 왕으로 선정했다는 전설(1사무 16,1-13) 말고는 온 구약 시대에 걸쳐 자랑할 만한 것이 없는 빈촌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군주로 여겼기 때문에 다윗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곧 메시아도 당연히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기대가 있었다. 메시아 탄생에 대한 기대는 미카 5장 1절에 분명히 드러난다 -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예수 시대 전후에 성행했던 아람어역 성서(따르굼)에서는 ‘다스릴 분’을 분명히 밝혀 ‘메시아’라고 단정하였다.

 

예수님 탄생 성당 (Church of the Nativity, 유스티아누스 성당)

로마 제국 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324년에 베들레헴으로 순례를 와서 예수의 탄생지로 전해오는 동굴을 참배한 후 아들에게 청해서 바로 그 동굴위에다 성당을 짓게 하였다. 공사는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339년 5월 31일에서야 축성되었는데, 이 성당을 ‘콘스탄티누스 성당’이라고 칭하였다. 그 후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된 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그 후 지붕과 바닥과 내부 장식 정도만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성당이 1,470여 년 동안이나 보존된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기원 후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범하여 모든 성당을 허물었는데,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만 그대로 두었다. 그 이유는 어느 화가가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찾아온 동방 박사들을(마태 2,1) 그 성당에다 그려 놓았는데 우연하게도 페르시아 점성가들로 분장시켜 놓았기에 페르시아 군인들은 자기네 조상들을 대하고 나서 성당을 허물기는커녕 오히려 참배를 했던 것이다. 그 후 638년 이스라엘을 점령한 이슬람 군주 오마르도 역시 이 성당을 허물지 않고 오히려 기도를 드렸는데, 회교 경전에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종려나무 아래서 낳았다고 하는데, 이 종려나무는 바로 베들레헴에 있었다는 회교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탄생 성당의 입구는 유달리 작다. 높이 약 140cm, 폭 100cm 가량 되는 출입구가 바로 그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안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새삼 깨닫게 하는 문이다. 

 이는 거룩한 장소에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을 막고 또 왕과 귀족들도 물론 누구나 이곳을 들어가는 사람은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게 한 때문이다. 그래서 이문을 '겸손의 문'이라고도 한다. 제대 양쪽 계단을 따라 제대 밑으로 내려가면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베들레헴 별', 즉 예수님이 태어나신 자리에 은색의 별이 있다. 탄생 동굴에서 서너 걸음 물러나서 다시 두 계단을 내려가면 아기 예수를 눕힌 구유가 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천주교회 소속의 굴이 있다.

비잔틴 시대 교회 내부의 바닥 모자이크: 로마제국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말살정책에 의해, 예수 탄생 동굴 위에 로마의 신전이 세워져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네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게 되었다. 그후 황제의 명에 의해 339년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그 후 파괴되었다. 다시 비잔틴 시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지만 또다시 파괴되었다. 현재의 예수 탄생 교회는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재건된 건물이며, 그리스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회가 여러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교회 내부 보이는 발굴 당시 드러난 옛날 교회의 바닥의 모습이다. 과거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의 내부의 바닥 모자이크가 일부 나아 있다. 예수 탄생 동굴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구유 동굴' 이 있는데, 아기 예수를 구유에 눕힌 곳이며 가톨릭의 소유이다. 예수님이 태어난 자리에 14개의 은별이 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가지 14대 다윗부터, 바빌론에 이거할 때까지 14대, 바빌론으로 이거할 때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를 상징,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한다. 예수 탄생 성당 앞 광장(일명 구유의 광장)에서 위로 쳐다보면 적어도 세 종류의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스 정교회 십자가, 아르메니아 정교회 십자가, 그리고 프란치스코 수도회 십자가이다. 세 개의 수도원 벽이 성당 건물 정면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예수 탄생지가 자기 고유의 소유지임을 주장하는 것 같다. 예수 탄생 성당은 외관이 수수하여 마치 중세의 커다란 돌성채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큰 대문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얼른 보아서는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같지 않고 마치 어떤 창고로 들어가는 뒷문 같은, 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구멍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본래 문은 세 개나 있었고 훨씬 컸다. 그러던 것을 두 개는 막아서 벽이 되었고 중앙의 문인 현재의 문도 두 번에 걸쳐서 지금처럼 축소되었다. 하지만 좁고 낮은 문을 들어서면 웅장하고 거대한 예수 성탄 성당을 만나게 된다. 붉은 색 돌기둥이 오른편과 왼편에 두 줄로 늘어서 있는데 한 줄에 기둥이 열 개씩이니까 모두 마흔 개나 된다. 길이 51m, 폭 24m나 되는 거대한 성당이다. 그리스 정교회가 이 성당을 소유하면서 성당 후진 중앙과 후진 오른쪽에 제대를 하나씩 설치하여 전례를 거행하고, 후진 왼쪽에도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제대 두 개를 설치하여 전례를 거행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소속이 아니므로 불행해도 미사를 봉헌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1881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예수 탄생 성당 바로 옆에다가 카타리나 성당을 세웠다. 전 세계로 방송되는 성탄절 전야의 베들레헴 미사는 바로 이 카타리나 성당에서 봉헌되는 것이다. 

 

 

 

 예수님 탄생 성당 외부 모습

성당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거대한 성벽같이 생긴 건물이 아르메니아 수도원이로고 합니다. 정면의 예수님 탄생 성당 정문은  겨우 사람 한 명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좁은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성물 도난 사고를 막기 위해 후대(後代)에 문을 작게 고쳤다고 하네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이다. 별은 1717년 가톨릭교회(프란치스코회)에서 만든 별이라고 한다.

 

 

 

 

 

 

이곳 예수님 탄생 기념성당내 예로니모 성인의 무덤 성전에서 미사 봉헌을...

 

 

 

 

 

 

카타리나 성당 (Church of st Catherine)

예수 탄생 성당 왼편에 위치한 근대식 성당인 카타리나 성당은 1881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건축되었다. 이 성당에서 매년 12월 25일 성탄 자정미사가 집전되고 있다. 이 성당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예수 탄생 동굴과 구유 동굴 비슷한 동굴이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386년부터 34년 동안 예르니모 성인이 은거하시며 집필활동을 하신 곳이다. 예르니모 성인의 가장 돋보이는 일은 신구약성서를 히브리어 및 그리스어 원전에서 라틴어로 완역한 ‘불가타 역본’으로 이 번역이 교회의 공인을 받아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수도원을 들어서면 중심부에는 성모상이 정면에 보이고 그 아래 성 예레니모의 모습이 새겨져있는 높은 기둥이 먼저 보인다

카타리나 성당 지하에는 예로니모 성인이 34년간 은거했던 동굴이 있다. 성 예레니모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에 대한 광대한 학식과 지식이 있었다고 한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곳에서 신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완간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불가타 역본'이다.

 

가타리나성당 전경

 

 

가타리나 성당 내부

좌석 3백석 정도의 성당으로 성탄절 전야에 예루살렘 주재 가톨릭 총대주교가 집전하여 전 세계로 방송되는 전야 미사는 바로 이 카타리나 성당에서 거행된다고 한다. 제대 뒷편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 설치되어있다.

 

 

성모님께 봉헌된 제대와 제대 아래 아기 예수님

 

이집트로 피난가는 성가정

 

프란치스코 성인과 새들

 

요셉성인의 무덤

 

 

 

 

하느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성서 번역하는 예로니모 성인

 

참수 당하는 카타리나 성녀 스테인글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