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스탬프 투어

문화유산 방문자 여권 투어 I 관동 풍류의 길 I 속초 신흥사, 양양 낙산사 I 2023년 6월 16일

경원이네 2023. 6. 30. 08:37

문화유산 방문 투어 2일차,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옆지기가 가고 싶어하던 고성통일 전망대로 향했다. 해파랑길을 걸었던 터라 가는 길이 익숙하다.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곳인 출입신고소에도착을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업무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일전망대 관람을 마치고 속초 신흥사로 향했다. 

 

신흥사 입구 주차장에는 더운 날씨에도 주차를 위해 기다리는 차량이 줄을 서 있다. 

아~~~~ 단풍철도 아닌데 이 더위에 왠 사람이 이리 많을까?

어찌됐건 6,000원의 비싼 주차비를 정산하고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간신히 주차했다. 설악산은 여러번 방문했으나 이번 방문 목적은 사찰이어서  문화유산 스탬프를 찍기 위해 종무소로 향했다. 

 

길위에서 만나는 문화유산 이야기, 한국 진경 문화의 꽃 - ② 관동 풍류의 길 

 

 

설악의 절경을 품은 사찰 속초 신흥사

신흥사는 삼국 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이 창건한 사찰로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자리에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세 명의 스님들에게 백발 신인이 나타나 절 터를 점지해 주는 꿈을 꾼 뒤 옛 터 아래쪽에 다시 절을 세우고 신흥사라 이름 지어 흥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95년 영동지역 불교를 새로 부흥시킨다는 염원을 담아 한자를 새 '신'자로 바꾸었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 ‘청동시루 ’, ‘극락보전보물 ’, ‘경판 ’, ‘보제루 ’, ‘향성사지 3층 석탑보물 ’ 및 ‘삼불상 ’, ‘명부전 ’, ‘선제루 ’, ‘칠성각 ’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그 가치를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

17세기 중엽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는 보물로 특히 불상 제작에 있어 조성화원(造成畵員)과 화성화원(畵成畵員), 즉 불상의 제작과 개금·개채를 분리해서 작업이 진행되어 당시 불상의 제작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불교조각사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자료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와 조화로운 형태미를 갖추고 있다.

 

극락보전

신흥사 극락보전은 다포(多包)식 팔작지붕 건물로서 기단과 계단, 창호 등 높은 품격의 요소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기단의 모란, 사자 문양과 계단 소맷돌의 삼태극, 용두 문양 조각들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귀한 사례로 형태, 구조, 장식 측면이 뛰어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향성사지 3층 석탑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나타나는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탑 양식과 달리 전체적인 형태가 무겁고 형식적인 장식을 둔 면이 많다. 동해안에서는 가장 북쪽의 신라 시대 석탑으로 그 보존의 가치가 매우 크다. 

 

신흥사 방문을 마치고 이어지는 문화유산 방문지는 양양 낙산사다. 신흥사에 비해 이곳 주차장은 한산하다. 주차요금은 신흥사와 달리 무인 정산을 해야 한다. 요즘 사찰마다 입장료가 없으니 좋다. 2005년 대형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2007년 복원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을 다녀간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참 많이 변했다. 스탬프를 찍기 위해 정문 매표소로 향하는 길에 데크길 공사를 하고 있다. 덥다는 말만 되풀이 하면서 매표소에 도착, 스탬프를 찍고 홍련암으로 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옆지기도 힘들어 한다. 아래 사진들은 몇년 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수려한 절경의 천년 고찰 양양 낙산사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자 관동팔경이기도 한 낙산사는 671년(문무왕 11년) 신라 시대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고 858년(헌안왕 2년)에 중건한 이후 몇 차례 다시 세웠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었지만 1953년 재건하였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과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사리탑보물 ’,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 ‘칠층석탑보물 ’, ‘해수관음상 ’, ‘칠관음상 ’과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 창건주인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 등 숱한 성보 문화재를 갖추고 있는 관음성지이자 천년고찰이다.

 

낙산사 공중사리탑

현존하는 승탑형 불사리탑의 새로운 예로 양식적으로나 세부에 있어서나 조선 시대 왕릉의 장명등과 유사성이 다분하여 양자 사이의 교류 관계, 나아가 절집 석조물과 그 밖의 석조물의 양식적인 영향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건칠관음보살좌상

낙산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건칠불상의 표현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 초기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칠층석탑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1467년(세조 13년)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고려 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되었다.